
97세 역사의 김동훈씨
1923년 충북 영동 출신으로 올해 97세가 된 살아있는 증인 김동훈 씨.
이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 1급으로 손발톱은 물론 바리캉으로 머리까지 단정하게 자른 모습은 입을 다물 수 없다.
상위 계층에 살아 봐도 늘 긍정적인 그는 피리를 불며 하루를 시작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다.
지난 12일 김동훈씨를 만난 자리에서 건강의 비결에 대해 묻자 “아직 아픈 곳은 없다. 소식과 꾸준한 운동, 햇볕을 쬐는 게 비결이라며 오래 살 수는 없다. 그냥 안 아프게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놀라게 했다.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자기관리 고수 97세의 김동훈 씨는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다.
서산시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당시인 15년 전부터 김동훈씨를 지속적으로 관리했다는 서산시 장애인작업장 옥무택원장은 “그 당시 만난 할아버지는 작은 체구지만 기백이 뛰어나셔서 기억력이 꽤 좋으신 분이고 말도 잘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현모양처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할아버지가 한 분께선 이제 잠자코 계신 할머님을 모시고 계시고 계시고 계셔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계셔주셨다.https://youtu.be/9jMSRumeEXA
농약이 눈에 들어 시각장애 1급을 받아 젊은 시절 영동에서 전경으로 근무하는 서산 거북면으로 이주해 남의 농토를 얻어 큰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김동훈씨.
그 때는 누구보다 밝은 시력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농약 살포 경운기에 탑재된 농약 파이프가 터지면서 농약이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치료시기를 놓쳐 1급 시각장애인이 됐고, 지금은 요양보호사의 수발을 받으며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내게도 인생의 황금기가 있었다 는 김동훈씨에게는 지나간 과거와 기구한 운명에 대해 들려줬다.간첩을 잡은 공적수당을 받지 못해 50대에 전경으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나무꾼이 상을 받은 사람이 동굴에 있다는 신고를 받고 대원 몇 명과 함께 산에 출동해 동굴 앞에 도착했다.
그는 혹시 모르니까 동굴 쪽으로 총을 겨누게 하고는 돌아서서 동굴 위로 가서 귀를 기울였다.안으로는 김일성 수령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아, 간첩이 맞네 하고 꼼짝 마라, 너희는 포위됐다. 손들고 나와!라고 외쳤다.
큰 소리가 나며 동굴 안에 있던 남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여자는 허벅지에서 총을 꺼내 대항하려 했다. 이때 총으로 동굴 쪽을 노리는 대원들이 사격했고 총탄이 여자의 배를 뚫고 항문을 관통했다. 내장이 항문으로 흘러나왔다. 급히 칡덩굴을 휘감아 영동경찰서에 넘겼다.
그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자는 남파간첩이고 여자는 당시 논산군의 한 면 면 촌장의 딸로 확인됐다는 말을 들었다.
간첩 2명을 붙잡은 공을 세우고도 남이 공을 세운 것으로 둔갑해 공적 수당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6남매 중 4남매를 비명으로 잃었고 김동훈씨는 6남매를 낳았다. 장남은 50대에 농촌지도소 소장직으로 근무하다 일본으로 연수를 갔다가 점심식사 후 낮잠을 자다가 비명에 돌아갔다.
둘째 아들은 농사를 짓고 있다. 그 트랙터를 고치기 위해 기계 밑에서 작업하던 중에, 버팀목이 충분하지 못하고 트랙터가 떠내려가다가 깔려 압사당했다.
셋째 아들은 여행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고, 둘째 아들은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줄타기를 하다가 밧줄이 끊어져 강물에 빠져 익사했다고 한다.
현재 오산에 사는 넷째 아들과 서울에 사는 딸만 생존해 가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서산에 온다.서산시의 점자보급률을 주도하며 김동훈은 서산시의 점자보급률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보통사람에겐 당연한 일이, 시각장애인들에겐 불가능한 일이 읽기였다. 책이나 글자 하나를 읽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늘 생각했다.
2014년경 관내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률이 낮은 것을 알고 현재 폐교된 서산시 해미면 반양초등학교 교장을 찾아가 남는 교실 하나를 빌려 달라고 요청하며 점자교육을 지도했다.지금도 김동훈 씨에게 배운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쓰고 있다.연탄을 교환해 자수성가한 화재진압에 성공2015년경 서산시 장애인복지관에서는 난방유 인상으로 기름보일러 가동이 어려운 취약계층 장애인 가정을 위해 연탄보일러 설치를 지원하게 됐다. 당시 김동훈 씨도 연탄보일러 설치 욕구가 있어 연탄보일러를 설치하게 됐다.
연탄은 하루에 두 번은 꼭 갈아야 한다. 그날도 늘 그렇듯이 스스로 연탄을 갈게 되었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아 예전에 설치된 기름보일러 기름통 근처에 탄 줄 알았던 연탄재를 올려놓다가 불이 나고 말았다.
연탄보일러는 김동훈 옹의 방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설치돼 있었다. 눈이 먼 그가 방에 돌아왔을 때 갑자기 탄 냄새가 코를 찔러 불이 났다고 판단한 그는 방 안에 설치된 화장실에서 세면기에 수돗물을 담아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가 연방 물을 끼얹었다.
불이 꺼지고 조용해진 그는 그제서야 시각장애인용 전화로 119에 신고했다. 소방대원이 왔을 때는 이미 불이 꺼진 상태였고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그날 화재로 물을 나르기 위해 수없이 이동하다 문에 부딪힌 상처가 얼굴에 남아 있었다.콩 심은 곳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고 비둘기가 팠다는 것을 알았다. 김동훈 씨는 밭에 검은 콩을 하나하나 세며 콩을 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사회복지사가 찾아와 콩은 잘 크느냐고 묻자 비둘기는 다 죽어서 콩은 못 자란다고 불평했다. 사회복지사가 혹시나 하고 밭에 나가 확인해보니 정말 조금밖에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사회복지사는 비둘기가 콩을 뽑았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비둘기는 콩을 좋아한다. 이따금 비둘기 소리가 나서 콩 심은 데 손가락으로 찔러보면 콩이 없어졌다고 해 깜짝 놀랐다.
이어 어떻게 콩 심은 장소를 정확히 아셨느냐고 물어 콩 심을 때 이미 내 손가락으로 확인해 놓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동훈 옹은 눈은 멀지만 인생의 달인임에 틀림없다.
서산시대 – admin (ss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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